앎의 본래적 속성과 교육의 역할

원글 출처: https://blog.naver.com/jjl0909/222175130349



  2017년 봄에 개봉한 컨택트(Arrival, 2016)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 인생 영화 중 하나로 미국 작가 테드 창의 소설 ‘The story of your life’를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언어학자인 주인공은 외계 생명체와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시도 끝에 끝내 그들의 언어를 익히게 되는데, 처음과 끝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그들의 회귀적인 통사 체계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시간의 축을 넘나드는 의식적 자각을 가능케 합니다. 영화와 관련한 주요 평론들은 바로 이 지점, 곧 언어적 차이가 사고방식의 차이를 야기하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바 있습니다.

사실 어휘 체계와 통사적 특징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사피어-워프 가설)은 이미 여러 한계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 언어학 연구에서 더 이상 진지하게 다뤄지지는 않는 주제입니다. 20세기 초반 사피어의 제자였던 워프는 이누이트 족의 언어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한정적인 영어와 달리 눈의 습도, 강수량, 풍속 등 눈의 여러 속성을 반영한 수도 없이 많은 단어들을 이누이트인들은 공유하고 있었고, 따라서 영어 화자와 달리 기상 상황을 더욱 민감하게 인지하고 그 차이를 변별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워프의 이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이누이트어의 문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한 것임이 밝혀짐으로써 이러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다루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컨택트>가 인상적인 까닭은 생물학적 기초의 차이가 극대화되었을 때 앎의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의 가능성을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구체적으로 그려내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작가가 극중 외계인('헵타포드')들이 지구의 언어와 달리 선형적이지 않은(회귀적인) 언어 체계를 갖추도록 설정한 것은 인간과 달리 몸에 앞과 뒤가 따로 없고 눈에 해당하는 기관이 몸 둘레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데서 말미암은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상은 한쪽 면에만 눈을 가진 인간이 그 생물학적 특징으로 말미암아 물리적인 전후 관계를 추론을 통해 개념적인 선후·상하 관계로 확장시켜 그 관계를 언어에 적용한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는 앎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앎의 방식을 결과의 형태로 방증하기도 합니다. 언어학의 하위 분과인 의미론에서는 어휘들의 의미 관계를 탐구하는데, 이 관계는 종종 인지적이거나 사회적인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단어들이 모여 일정한 장(field)을 이루고, 이러한 장의 형태로 어휘부(단어 목록, 집합)가 생성된다고 보는 구조주의적 의미장(semantic field)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의미장을 탐색하는 것으로 인간의 인지적 경향성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13세기 독일에서 kunst는 귀족의 교양 지식(기사도), 도덕과 관련된 지식을 가리키고 이에 반대되는 의미로 list가 평민의 일상적, 기능적 지식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다가, 14세기 중세 봉건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kunst의 의미가 기능적 지식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고 list가 어휘부 밖으로 밀려나가게 되어 지식을 의미하는 단어로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대 언중들이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의식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언어에 얼마나 치밀하게 녹여내려고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종종 의미장을 통해 인간의 의식이 닿는 한계를 확인할 수도 있는데, 편견의 반의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지각은 비단 이러한 특징뿐 아니라 용량과 처리 및 지속 시간, 저장 형식에 있어 많은 한계를 지닌 신경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앳킨슨은 이러한 인간의 자극 처리 과정을 ‘이중 저장 모델(dual-store model)’을 바탕으로 그 작동 원리를 구명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의 최초 이론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인지적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이후 이러한 과정들이 수동적이거나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감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조차 개인이 갖고 있는 장기 기억의 암묵적 지식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결국 무엇인가를 보는 것도 과거의 학습된 ‘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행하게 된다는 점은 가르치는 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앎이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가르침은 <마음과 학습>의 저자의 의견대로 행동의 기저에 놓인 ‘체화된 편견들을 명시화’하고 특정한 국면에 주의를 집중하도록 조향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습은 일정 단계에서 멎게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끊임없이 객관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학교교육을 재설계할 수 있다면 우리의 학교가 어떤 형태와 내용을 취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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