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체계로서의 한국의 교육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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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학습』의 저자들에 따르면 일정한 테두리와 그 테두리를 획정하되 절대적이지는 않은 핵심적 속성을 지니는 일련의 유기적 복잡성 시스템 내지 복잡체계는 비평형적 상태에 놓여 있으나 척도독립적인 더 큰 단위(체계)에서 볼 때 안정적 패턴을 보이는데, 이는 이 체제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다른 체제에 대하여 항시적 가변준비상태에 놓여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제의 작용 과정을 저자들은 ‘학습’이라고 보았고, 학습의 과정에서 정합성(테두리와 테두리 획정을 위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적 관계를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진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관점은 인간 개체 단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용법의 ‘학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학습체계로서의 학습하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재구조화가 체계의 내적 원리를 따라 일정한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사실로부터 인간 학습이 항상 가르침의 대상이 되는 정보가 그대로 전달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시사하게 된다.
그러나 학습의 주체는 생물학적 역동성을 지닌 모든 단위의 체제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이들 체제 역시 일정한 속성으로 말미암아 경계를 유지하며 체제를 이루는 여러 하위 체제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의 합이 곧 하나의 체제의 역동과 같지는 않으며, 그 테두리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끊임없이 적합한(안정된) 방식으로 존재하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복잡계적 관점으로 바라본 근현대 한국의 교육제도(주로 ‘학교’와 관련되는 지점에서 논의되는 ‘교육’)의 역사는 학습체계로서의 교육체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지금과 같은 보편적 형식교육으로서의 공교육제도는 해방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그나마도 휴전 이후 수십 년이 지난 1980년에 이르러 중학교 진학률이 90%를 넘겼으므로 일제 강점기 이전의 시기에서 지금의 교육 체계와의 관련성을 무리하게 찾기는 어려울 듯하나 분명 1910년 이전의 조선에서도 교육과 관련된 일련의 행위들은 누적적으로 제도화되어 안정되어 있었다.
조직의 방식 등 구체적인 내용은 ‘학교’에 상응하는 기관들이 처한 더 큰 단위의 체계와 그 하위 체계의 역동에 따라 다소 달랐으나, ‘교육하다’라는 개념에 있어서는 서양의 교육에 대한 인식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에 의해 특정 어휘나 문법 구조가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므로 언어도 일종의 살아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영어문화권의 ‘teach’의 어원에 해당하는 공통조어의 ‘deik’가 ‘가리키다’라는 의미를 가졌고, 고대 영어의 ‘tacn’이 이와 비슷한 의미를 유지하며 ‘가리킴’과 ‘지시함’, ‘가르침’이라는 여러 내포를 가진 다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적용의 전이(의미 분화)와 어휘 분화는 후기 중세 한국어(15~18세기)에서도 목격된다.
이후 16~17세기에 걸쳐 1)의 ‘ᄀᆞᄅᆞ치다’는 ‘ᄀᆞ르치다’를 거쳐 오늘날의 ‘가르치다’로, 2)와 3)의 ‘ᄀᆞᄅᆞ치다’는 ‘가리키다’로 분화되었고, 3)의 의미로 쓰이던 ‘가리키다’는 모종의 이유로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가르침’의 행위가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떤 점에서 보면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인식적인 틀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까지 남아있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15, 16세기까지의 ‘가르치는’ 행위는 ‘가리키는’ 행위와 관련이 있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이 둘을 분리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제도화된 행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3)의 의미로서 ‘ᄀᆞᄅᆞ치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 자리를 ‘명령하다, 지시하다, 지휘하다’ 등의 한자어가 후대에 대체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ᄀᆞᄅᆞ치’는 행위는 일상적 삶 속에서 이루어진 학습 행위, 가르침의 행위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15세기에는 주로 양반 자재들만 다닐 수 있던 서당이, 17세기 이후 과거시험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비정기시험 횟수도 함께 증가) 일반 백성들도 다닐 수 있을 만큼 그 수가 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ᄀᆞᄅᆞ치다’가 ‘ᄀᆞ르치다’와 ‘ᄀᆞ르키다’가 분화된 것은 어떤 관계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서당, 성균관을 비롯한 전근대 사회 교육기관의 확대(성균관 인원도 초중기에 일부 증가)는 언중들로 하여금 이러한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가르침'의 방식이 무엇을 단순히 가리키는 것과 다소 다르다(일방적인 전달보다는 대화를 통해 앎을 확인하고 확장시켜 나감)는 인식을 공유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복잡성 개념에 기대어 생각해보면 이러한 한국교육의 역사적 지형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오늘날의 한국교육은 일종의 학습체제로서 여전히 이러한 유산들을 품고 있을 수 있다(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가르키다', '가리치다'와 같이 두 단어를 헷갈리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학교교육은 일제강점기의 고보 졸업을 통한 입신양명, 해방 후 개천 용 신화가 주로 작용하여 조형한 것으로 보이지만 국권 침탈 이전의 교육적 상상이 갑자기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로써 학습체계로서의 교육체계에 대한 복잡계적 접근을 통해 미루어본다면 지금의 한국 교육은 단순한 외국 제도의 이식이 아닌, 그 이전으로부터 이어져 온 오랜 시대적 상황, 사람들의 인식, 교육제도의 끝없는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한 확장된 성장의 공시태일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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